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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과 소식

[전시문화]500년 조선왕조 역사의 현장을 살짜쿵 엿보고왔다(국립고궁박물관 전시회일정)

by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싶어 2025.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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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별 전시:

  • 궁중 여인의 복식: 2025년 3월 12일 ~ 2025년 5월 11일, 1층 기획전시실 4
  • 궁중음식, 공경과 나눔의 밥상: 2024년 11월 20일 ~ 2025년 2월 2일, 2층 기획전시실 Ⅰ·Ⅱ

상설 전시:

  • 조선 국왕
  • 왕실 생활
  • 대한제국 어차
  • 궁중 서화
  • 왕실 의례
  • 과학 문화

온라인 전시:

  • VR 전시:
    •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 특별 공개 <해학반도도>, 다시 날아오른 학
    • 궁중서화
  • 전시 동영상:
    • 국외 소재 한국문화재 해학반도도 다시 보기
    • 고궁연화, 경복궁 발굴•복원 30주년 기념 특별전 전시해설 영상
    •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 전시 해설 영상 – 발굴편
    •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 전시 해설 영상 – 전시편
    • 인사동 출토유물 공개전 연계 공연: 박다울의 '뿡'
  • 테마 영상:
    • 조선왕실의 어보 (3D)
    • 인사동 출토 금속활자 (3D)

더 자세한 정보나 특정 전시회에 대한 문의는 국립고궁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gogung.go.kr/)를 방문하시거나, 박물관에 직접 문의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관람 시간:

  • 주중·주말: 10:00 ~ 18:00 (입장 마감 17:00)
  • 수·토요일: 10:00 ~ 21:00 (입장 마감 20:00)

휴관일:

  • 1월 1일 (신정)
  • 설날 당일
  • 추석 당일

방문 전에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최신 정보를 확인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용상의 주인은 간데없고

 

오늘 경복궁은 완전 개방이 안되어 근정전도 보지 못하고 박물관만 들러 왔네요~

 

조선왕조는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약 500여 년간 한반도를 통치한 한국의 마지막 왕조입니다. 고려 말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건국되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으나, 19세기 말 외세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하고 멸망했습니다.

건국과 초기 안정 (1392년 ~ 15세기):

조선왕조는 고려의 무장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통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역성혁명을 통해 건국되었습니다. 이성계는 한양(현재의 서울)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조선'이라 정했으며, 유교를 통치 이념의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태조, 정종을 거쳐 태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사병을 혁파하고 호패법을 실시하는 등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황금기를 이끈 군주로 평가받습니다. 훈민정음 창제를 통해 백성들의 문맹률을 낮추고 자주적인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과학 기술 발전과 농업 생산력 증대, 국방력 강화 등 다방면에 걸쳐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후 문종과 단종의 짧은 재위를 거쳐 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성종대에 이르러 《경국대전》을 완성하며 통치 시스템을 정비하고 문화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사림 정치와 당쟁 (16세기 ~ 17세기):

16세기 이후에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성장한 사림 세력이 정치의 중심으로 부상했습니다. 이들은 훈구 세력을 견제하며 이상적인 유교 정치를 추구했으나, 점차 학문적,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쟁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면서 당쟁은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당쟁 속에서도 학문 연구는 지속되어 이황과 이이와 같은 걸출한 성리학자들이 등장하여 한국 유학의 심오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당쟁의 심화는 정치 운영의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왜란과 호란 (16세기 말 ~ 17세기 초):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조선은 두 차례의 큰 외침을 겪게 됩니다.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은 일본의 침략으로 국토가 유린당하고 많은 백성이 희생되는 큰 피해를 입혔으나, 이순신 장군의 활약과 의병들의 저항으로 결국 일본군을 격퇴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후유증은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후 1636년에는 청나라(후금)의 침입인 병자호란이 발생하여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으나 결국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차례의 외침은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북방 방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탕평책과 문화의 융성 (18세기):

18세기 영조와 정조 시대에는 당쟁의 폐해를 극복하고 왕권 강화를 위한 탕평책이 추진되었습니다. 영조는 탕평파를 등용하고 당쟁의 근원을 제거하려 노력했으며,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여 학문 연구를 장려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등 문예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수원 화성을 건설하여 새로운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실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사조가 등장하여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정약용, 박지원, 홍대용 등이 대표적인 실학자들로, 과학 기술, 농업, 상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주장을 펼쳤습니다. 서민 문화도 발달하여 판소리, 민화 등이 인기를 얻었습니다.

세도 정치와 사회 동요 (19세기):

19세기에는 왕권이 약화되고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60여 년간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세력이 권력을 휘두르면서 정치 기강이 문란해지고 백성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가혹한 수탈과 부패한 관리들의 횡포에 저항하여 전국 각지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1862년의 임술농민봉기는 사회 변혁의 요구를 강하게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서양 세력의 접근이 잦아지면서 천주교 박해가 심화되기도 했습니다.

개항과 외세의 침략 (19세기 말 ~ 20세기 초):

19세기 후반, 조선은 서양 열강의 압력에 의해 문호를 개방하게 됩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을 비롯한 서양 국가들의 경제적, 정치적 침탈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위정척사 운동 등 다양한 저항 운동이 일어났으나, 시대의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은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나, 정부의 진압과 일본군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면서 조선은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 상태로 전락했습니다. 결국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면서 500여 년의 역사를 마감하게 됩니다.

경복궁 홈페이지:

https://www.royalpalace.go.kr/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법궁으로, 조선 건국 초기에 창건되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고종 때 재건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경복궁 홈페이지에서 역사, 건축, 관람 정보 등 다양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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